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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달은 ‘반(半)’달이 아니다 < 3.15광장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경남도민일보
반달은 정말 반쪽짜리 달일까요? 글자 그대로 딱 절반만 보이는 걸까요? 우리는 가끔 아이스크림 ‘쌍쌍바’를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지 못했을 때, 세상에서 제일 황당한 일이라며 농을 던지곤 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기에 빈틈없이 쪼개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수치상의 ‘절반’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이렇게 부르곤 합니다. 아직 다 그려지지 않은 ‘미완의 그림’,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10대 소년(소녀)’, 노랫말을 다 담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선율’…
하지만 50퍼센트만 그리다 만 그림인지, 어른이 되기 위한 반환점을 돌고 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존재’는 정확한 수치로 계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쌍쌍바처럼 말이죠.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의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완전함’으로 인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여백이 있다고 해서, 그 아이의 오늘을 ‘미완’이라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반은 과거이자, 다른 반은 현재입니다. 가수 최백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무작정 올라가는 달맞이 고개에 오래된 바다만, 오래된 우리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이대로 손을 꼭 잡고 그때처럼 걸어보자.” 그의 노래처럼 삶의 절반은 과거이고, 나머지 절반은 현재입니다. 절반은 추억이며, 다른 절반은 그리움입니다. 이 ‘반’과 ‘다른 반’은 그저 성질이 다를 뿐입니다. 반달처럼,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담긴 감정과 생각의 비율이 정확히 어떠해야 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따라서 ‘미완의 그림’도 그 자체로 완성된 그림이며, ‘10대 소년’도 어른과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입니다.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 그 자체로 훌륭한 ‘음악’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이 겪는 고민과 갈등, 때로는 배움의 문턱에서 마주하는 숱한 시행착오까지도 그것을 ‘부족함’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 또한 하나의 완성된 삶의 과정이며, 더 넓은 세계를 향한 소중한 발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시인 정호승은 노래했습니다.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아이들은 누군가의 사랑 어린 시선 속에서 스스로 차오릅니다. 반달이 그 모양 그대로 밤하늘을 충분히 밝히고 있듯이,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무엇이 될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미 빛나고 있는 존재’입니다. 보름달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달은 반달 그 자체로 이미 완결된 아름다움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삼천포제일중학교 아이들의 모습에서 부족함이 아닌, 그들만의 ‘고유한 달빛’을 발견해 봅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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